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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연세대학교>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박물관을 들렀다.

그러면서 연세대학교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884년에 한국에 온 장로교 의료선교사인 '알렌'이 당시 명성황후 친족들을

서양의술로 치료하면서 황실의 총애를 받았다.

그래서 최초의 근대식 의료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제중원(광혜원)을 차린다.


1885년에 왕진을 가는 알렌 의료선교사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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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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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은 '의료선교사'라는 이름보다는 외교전문가 or 탁월한 정치가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한 능력을 통하여 (황후가 암살 당하고,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되는)

1898년에 조선땅에서 '기독교 포교의 자유'를 얻어 내기도 하고,

1902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이민을 고종에게 제안해서 따 내기도 했다.

(하와이 이민으로 인하여 손흥조 씨가 한국에 재림기별을 갖고 오게 되었으니

하여간 우리와의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점거한 사실을 (고종의 대변인으로서)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금광채굴권, 철도개설권 등등 여러 잇권에 관여하여 미국인 친구들에게

몇 배에 해당하는 뒷돈을 챙겼으며, 그것이 고스란히 조선 동포들에게 부채로 남았다.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


알렌 선교사가 세운 광혜원이 나중에 세브란스 병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세브란스는 미국인 사업가로서 병원을 건축하는데 막대한 기금을 기중한 분)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장로교)로 인하여 <연희전문대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알고보면 연희전문대학은 언더우드의 단독 작품으로 볼 수는 없으며, 6개 종파의 통합 작품이다.

6개 종파를 대표해서 가장 기여가 많은 '언더우드'가 총대를 맨 것이다.


참고로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의 2세(원한경)는 거북선을 제조하거나 백두산 천지 깊이를 재는 듯

한국에 관심이 많았으며, 3세(원일한)는 1950.6.25 전쟁이 났을 때에 미국 해병대에 지원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할 정도 한국에 목숨을 다했다.

4세(원한광)은 교육박사로서 연세대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몇 년전에 퇴직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언더우드부터 시작된 한국 선교는 4대까지 이어져서 120년을 영향을 끼쳤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언더우드부터 손자까지는 신학과를 졸업한 선교사였으며, 그들 무덤 7기는 마포구 양화진 묘역에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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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대학이 훗날 연희대학교가 되었으며, 1958년에 백남준 총장이 세브란스 병원과

통합을 시도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연희+세브란스 = 연세대학교 라는 이름이 생겼다.


박물관 구석에 (한때 전시를 했으나 철거한 곳에서) 숨어져 있는 패널속에 눈에 익은

사진이 보였다.

그림1.jpg


의명학교에서 교사로서 봉사를 했으며, 순안진료소에서 의료인으로서 봉사했으며

럿셀 의사의 통역인으로서도 일을 했던 재림교인 김창세 박사님 모습이다.


연세대학교에 알아보니 그분은 연세대학교에서 당당하게 졸업을 했다고 했다.

삼육서울병원 기증인 명단에서 (김창세 후손들이) 1억 이상 기증했음이 명판에 새겨져 있고,

삼육대학교에도 많은 금액을 기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래 내용은 2016년 04월에 카스다에 올린 글이며,

참고 삼아 다시 한번 더 올려 본다.

우로부터 노설의사와 김창세선생2.jpg

맨 우측에 있는 분이 러셀(로설=노설) 의사입니다.

중앙에 있는 분이 오늘의 주인공인 '김창세 의사'입니다.

좌측은 대충 보면 한국재림교인으로서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이근억 목사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순안의명학교>라는 교명을 정한 때는 1909년 9월 입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정식 인사를 받은 것은 1910년 1월입니다.

당시 교사는 4명이었는데,

로설, 이근억, 김창세, 하동협 등입니다.


제가 유추하기에는 아마 1909년이나 191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으로 생각됩니다.

로설 의사가 미국에서 진남포 진료소로 왔을 때에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의 문제였을 겁니다.

1909년부터 로설의사의 통역 부분과 보조의사 업무를 한 사람이 바로 김창세 의사입니다.


의사는 로설 혼자 였으므로 출장/휴가 부재시에는 그 역할을 대신했던 사람이 바로 김창세 의사입니다.

대표적으로 1917년에 로설의사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 있을 때에 순안진료소를 책임지고 맡아서 일을 했어요.


자~!

그러면 김창세 의사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할까요?!

1904년에 한국재림교회가 진남포에서 시작함과 동시에 조선에서는 일본으로 인재를 보내서

한국재림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인쇄기술 및 영어교육 등을 배울 '견습생'을 보내게 됩니다.


1. 김승원 2. 김규혁(김이열 연합회장의 부친)


김창세 의사는 평안남도 용강군 서화면 죽본동에서 김승원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04년 김승원 신앙을 받아 들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서 받아 들였습니다.

1907년 1월에 부친(김승원)이 일본미션에 '전도 견습생'으로 파견될 때에 같이 따라 나섰지요.


당시 김창세 씨는 평양 서문에 장로교 소학교를 졸업한 상태였으며, 일본에 가서는 동경 간다구의

세이소쿠 영어속성학교를 입학하여 1909년 초에 졸업하여 한국에 오자마자 로설의사의 통역관 및

의료 업무보조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09년 가을부터 로설의사가 순안학교의 교장을 맡게 되면서 1913년까지 순안진료소 의사역할과

순안학교의 교사를 겸직하게 됩니다.

당시 교회의 지원으로 '연세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도 2년간 입학/졸업했으며,

(연세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역사책에는 5년동안으로 기록되어 있음)

집중적인 의사교육은 로설의사 밑에서 도제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1915년과 1917년에 대니얼스 대총회장이 조선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설교 통역을 위해 봉사합니다.


1917년 9월 1일에 순안의명학교에서 '신학과'를 추가하게 되는데, 6명의 교사중에 한명이 됩니다.

1.로설 2.오벽 3.스미쓰 4.이희만 5.나가도리(일본인) 6.김창세


1918년 6월 조선대회의 임명을 받아서 아시아지회에서 운영하는 중국 상해 홍십자회 총의원으로

발령이 나서 3년간 봉직했으며, 외과수술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합니다.


(로설의사는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다닐 때부터 벽돌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지식이 있었고,

순안병원을 건축하기 위해서 벽돌제조 작업자로 중국인이 몇 명 와서 일을 했는데,

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중국어를 배웠다고 하니, 김창세 씨는 언어의 천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1920년 11월 27일에 미국에 들어간 후 존스 홉킨스 대학원에서 재스크 교수의 지도 아래

1925년에 조선인 최초로 공중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받고

1925년 10월 18일에 모교인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조교수로 취임합니다.


하지만 철저한 재림신앙을 유지하면서 장로교/감리교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2년 후인 1927년에 다시 중국 상해로 건너갑니다.

그후 중국/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크고 작은 활동을 하다가 1934년 3월 14일 그의 나이 41세로

아쉽게 사망했는데, 해방후에 미국, 한국 전체를 통 털어서 재림교인 중에서 김창세 씨만큼

많이 알려 진 사람이 없다고 입을 모을 정도로 활동의 폭이 넓었다고 합니다.


김창세 씨의 장인어른은 이석관 씨입니다.

이석관 씨는 조선 초창기에 세워졌던 4개 교회중에 '강대모루 교회'의 개척자입니다.

이석관 씨의 첫째 사위는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안창호 선생의 아랫동서가 김창세 씨가 됩니다.)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서 안창호 도산의 영향으로 흥사단에 입단했으며,

임시정부의 산하기관인 대한적십자회가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했을 때에 교수진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1920년대 후반에 임시정부청사 임대료를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이를 인정 받아서 2001년에 건국포장으로 표창하기도 했습니다.)

춘원 이광수씨를 전도하기 위하여 노력했으며, 왕대아 여사에게 소개를 해 줍니다.

시조 및 각시대의 대쟁투 등을 읽도록 소개 및 설명을 함으로 춘원 이광수 소설 등에 스토리, 인물 등

재림교회의 영향을 주게 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좀 더 장수하여 오래 활동했더라면 한국재림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텐데

단명함이 많은 아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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