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학교
2015.02.23 19:57

제 9과 진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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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9

 

진리의 말

 

(22:20-21) “[20]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21]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Intro

우리는 매 주 반복적인 내용들을 공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혜의 말씀을 듣고, 그 지혜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잠언이 말하는 지혜의 큰 개념이다. 그리고 매 주마다 그 지혜를 구체적으로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를 배우고 있다. 이번 주에는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며, 악인의 형통함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욕을 절제하는 것의 중요성과 더불어 우리가 지혜 있는 자로서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지 각 요일별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번 과를 통해 지혜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되길 바란다.

 

 

 

일요일 : 진리에 대한 지식

 

잠언에서는 진리 혹은 지혜를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그 말은 진리를 얻기 위하여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원할 때 비로소 지혜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일요일 소지의 본문도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22:17-18) “[17]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18]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지혜자는 우리에게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들으라고 권면한다. 귀를 기울이라는 말은 집중하라는 뜻이다. 이 생각, 저 생각 복잡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지혜있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혜의 말씀이 들릴 때 집중해서 그 말에 귀를 기울일 때에 비로소 그 지혜가 마음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집중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것은 바로 지혜를 향한 사랑, 즉 간절함이다. 우리는 보통 어떨 때 간절함을 느끼나?

 

1. 절실할 때

첫째는 그것이 절실할 때, 그것 없이는 내가 도저히 살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사람은 간절해진다. 중국의 한신이 조나라와 싸울 때 강물을 등 뒤에 두고 진을 치도록 명령했다. 본래 병법에는 강물을 앞에 두라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강을 등지고 적들과 싸웠다. 그 결과 한신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신하들이 한신에게 강을 등지고 싸운 이유를 물으니 오합지졸인 군사를 이끌고 싸워야 하는데 만약 강물이 그들 앞에 있다면 그들은 힘껏 싸우지도 않고 도망쳐 버리게 될 것이나 물이 등 뒤에 있으면 사력을 다해 싸우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사람은 사지에 몰아넣은 후에야 살게 되고, 망할 지경이 되어서야 존재하게 된다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배수진이라는 말의 유래이다.

이처럼 사람은 절실해지면 간절해진다. 지혜가 내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찾고자 애쓸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지혜있는 자는 지혜에 목마른 사람이요,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다.

 

2. 가치를 알 때

둘째로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아무도 길거리에 있는 돌멩이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이 가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금광 속에 있는 금가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왜 그럴까? 그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지혜도 마찬가지이다.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지혜의 말을 해 준다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절실함이 있어야 하며, 그 지혜의 가치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18절에서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라고 할 때 은 히브리 말로 위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를 위장 속에다 잘 보존하라는 뜻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위장은 먹은 것을 소화시켜 내것으로 만드는 기관이다. 입으로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물이 위장으로 들어와 소화되고 흡수되어 음식물 속에 들어있는 영양분을 내 삶의 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먹은 음식이 효과가 있는 것이지, 먹은 것을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뒤로 나간다면 먹으나 마나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리도 우리의 귀를 통해 들어오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들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고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아는 것이 삶을 통해 경험되어 질 때 비로소 그 진리가 내 것이 된다. 매 주 마다 말씀드리지만 잠언이 말하는 지식은 앎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지식이다. 진리는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앎이요, 지혜이다.

 

이러한 지혜를 얻은 자들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 그 내용이 일요일 소지 밑에 부분에 나와 있다. 크게 3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1. 믿음

첫째는 믿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잠언이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치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 머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믿음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22:19)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서 지금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게 된다.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를 의뢰하며 살게하는 힘이다. 결국 지혜롭다는 것은 그 삶에서 여호와를 인정하고 의뢰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첫째되는 유익이다.

 

2. 확신

둘째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확신이다. 이것은 믿음을 통한 앎의 결과이다. 우리는 아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앎이 쌓여감에 따라 우리는 점점 더 내가 믿는 바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혜가 주는 유익으로서의 확신이다.

 

3. 책임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책임이란 내가 얻게 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하는 책임을 뜻한다. 어찌보면 솔로몬이 잠언이라는 책을 쓴 것도 이러한 책임감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때는 그것이 내 속에만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강물처럼 흘러야 하며, 그 강물이 닿는 곳마다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며 생명이 소생하는 일들이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를 얻은 자의 책임이다.

 

적용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간절한 마음으로 찾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얻은 지혜를 귀에다가만 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라는 위장 속에 넣어 지혜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 앎으로서의 지혜는 오히려 사람을 교만하게만 만든다. 그러나 그 지혜가 소화되고 흡수되어 삶으로 나타날 때, 지혜는 오히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 지혜를 통한 유익이 우리 모두의 삶에서 나타나길 바란다.

 

 

월요일 : 가난한 자들을 약탈함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시대부터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에 대해 수도 없이 말씀하셨다.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이방인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꾸어주라뭐 이런 내용이 모세 오경에 수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잠언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나온다. 바로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는 것에 대한 권면이다.

 

(22:22-23) “[22]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23]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사실 그 사람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상관없이 남의 것을 탈취하거나 압제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 죄이다. 그런데 왜 유독 여기에서는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는 것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보다 강한 사람은 약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약탈이나 탈취라는 행동 자체를 말한다기보다는 나보다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 그것이 살아남는 비결이다. 흔히 말하는 약육강식이라는 것도 나보다 약한 자는 잡아먹고, 강한 자는 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히려 잠언은 이러한 모습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그런 자들의 생명을 여호와께서 빼앗으시겠다 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적용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면 오늘날 가난한 자나 약한 자를 함부로 약탈하거나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얼마든지 오늘날도 약자를 무시하거나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 나보다 직급이 낮거나, 교육을 덜 받았거나, 재산이 적은 사람에게 우리는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잠 22장의 교훈은 바로 그러한 태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말해준다.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약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기를 원하시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질문은 지극히 큰 자에게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떻게 했느냐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 가난한 자, 나보다 낮고 천한 자에게 어떻게 대하였느냐를 심판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품성을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큰 자에게는 누구나 잘 한다. 나보다 강한 자에게는 누구나 굽실거리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나 나보다 낮은 자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그 사람의 품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보시는 것이다.

 

14:31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다.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곧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것이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 말씀이 마 25장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바로 그 사실을 깨닫고, 가난한 자, 약한 자 하나를 예수님 대하듯 대하는 자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요, 품성의 모본이다.

 

 

화요일 : 악인을 시기함

 

오늘 제목이 악인을 시기함인데, 좀 더 마음에 와 닿게 표현하자면 악인을 부러워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는 언제인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을 때다. 그런데 단순히 내게 없는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다고해서 다 부러워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수석을 모으시는 분들에게는 남의 집에 있는 멋진 돌이 부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제게는 그 돌이 전혀 부럽지 않다. 또 좋은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멋진 외제차 타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수 있지만,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차가 다 그 차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내게 없는 것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 그러나 갖지 못한 것을 누군가 가지고 있을 때 부러워하게 된다.

 

그렇다면 악인을 부러워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그 사람이 저지른 악을 부러워한다기 보다는 그 악을 통해 얻은 것, 그것이 돈이 됐든, 명예가 됐든 악을 통해 얻은 이익을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잠언은 이러한 부러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24:1) “[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악인을 부러워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도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나도 그것을 갖고 싶다는 말이다. 신여진이라는 사람이 부러우면 지는거다라는 책을 썼는데, 뭐 제가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제목에 공감하는 것을 봤다. 선악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한다는 말은 악에게 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도 그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으면 내가 누구를 부러워하는가를 보면 된다. 나는 어떤 삶을 부러워하는가? 큰 집에 살면서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가? 아니면 여기 저기 호화롭게 여행 다니면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가? 내가 무엇을 부러워하느냐 하는 것은 곧 내가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잠언은 우리에게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형통함이라는 것 자체는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도 형통케 하셨고, 의인들에게도 형통함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데 있다. 이러한 부러움은 두 가지 무지에 대한 결과인데, 첫째는 악인들이 당할 최종 결과에 대한 무지요, 둘째는 죄의 대가에 대한 무지이다.

 

최종 결과에 대한 무지

먼저 악인들이 당할 최종 결과는 바로 죽음이다. 지금 당장은 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결코 그를 부러워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어서 100억을 받았다고 하자. 아마 모두가 그의 삶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1년도 안되어서 파산하고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될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과연 그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악인의 형통함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은 그의 큰 성공이 부럽지만 결국 그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으므로 영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안다면, 아무도 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것은 첫째로 악인이 맞이할 최종 심판의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누리는 형통함이 아무 소용 없는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 죄의 대가에 대한 무지

둘째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죄를 위해 어떤 대가가 치러졌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죄가 우리 자신과 세상, 그리고 하나님께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분명히 안다면, 죄의 결과로 얻은 형통함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아들이 컴퓨터가 너무 갖고 싶었다. 그래서 늘 아빠에게 컴퓨터를 사 달라고 졸랐지만, 형편이 워낙 어려워서 그것을 사 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는 목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배를 타는 일이었다. 한 달만 나가서 배를 타면 컴퓨터를 사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먼저 어느 정도 가불을 받아 아들의 컴퓨터를 주문해 놓고는 배를 타고 나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배는 출항한지 3일 째 되던 날 큰 풍랑을 맞아 좌초되었고, 선원 전원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그 때 마침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택배 기사였다. 아버지가 떠나기 전에 미리 주문해 놓은 컴퓨터가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아들에게는 그 컴퓨터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자기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그 컴퓨터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죄의 결과로 얻는 형통함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이 땅에서의 형통함을 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죄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 형통함을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죄가 얼마나 슬픈 것이며, 그 대가로 예수님께서 어떤 죽음을 죽으셨는지를 안다면 결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적용

그러므로 악인들이 받게 될 최종 심판과 그 죄의 대가로 치러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함으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대신 의인의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다.

 

 

수요일 : 우리가 입 안에 넣는 것

 

잠언 23장은 우리가 입 안에 넣는 것 중에 크게 2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음식이고, 둘째는 술이다.

 

음식

먼저 음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23: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음식에 지나친 욕심을 품는 사람은 그 목에 칼을 대고서라도 그 욕구를 억제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절제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내가 먹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모든 욕구들을 잘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지혜자라는 의미에서 이런 권면을 하고 있다. 특히 3절과 6절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음식을 탐하지 말라는 것이다. ‘탐한다는 말은 이미 내게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한다는 뜻이다. 내게 충분한 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이 곧 탐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내가 쓸 만큼만 사용하며, 그 나머지 것은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이다.

 

2.

둘째는 술에 대한 권면이다.

 

(23:31-32)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지혜자는 먼저 술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거리는데, 이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싶은 매력을 느끼게 한다. 3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암직도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목에서 순하게 내려간다. 이것은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 목에서 매끄럽게 내려가는 촉감을 의미한다. 결국 포도주는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그런 음식인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것은 딱 거기까지다.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지만 일단 먹고 나면 그것은 뱀 같이, 독사같이 우리를 쏠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한번 독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온 몸을 마비시키며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것처럼, 술도 넘어갈 때는 좋지만 일단 몸 속으로 들어가면 그 해악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음식은 탐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술은 보지도 말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다음절에 술에 취한 자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23: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23:34)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23: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여기 표현들이 아주 재미있다. 먼저 술에 취한 자들은 눈에 괴이한 것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니 예전에 들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한 아버지가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게 되니까 이제 술을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으로 술집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서 아들에게 술자리에서 지켜야 할 예의나 매너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특별히 아들에게 가르쳐 주고싶은 것은 바로 취하기 전에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데 사실 그게 쉽지가 않다. 왜냐면 자신이 취했는지 안취했는지 자기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자신이 취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매우 객관적인 방법을 이야기해 주주었다. “아들아. 술은 언제 마시느냐보다 언제 멈추느냐가 더 중요하다. 술을 즐겁게 마시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취할 때까지 마시게 되는데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술에 취했는지 안취했는지를 아는 방법을 알려줄게. 저기 저 위에 달린 두 개의 등이 보이지? 저 등이 네 개로 보이면 넌 취한 거다. 끄러면 즉시 술잔을 내려놓도록 하여라.” 그러나 아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아버지에게 대답한다. “아버지, 저기에는 등이 한 개 밖에 없는데요.”

 

이 이야기가 뭘 말해주는가? 아무리 자기가 안취할 때까지만 먹으려고 결심해도 문제는 그것을 알 수도 없고, 절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지만 나중엔 술이 술을 먹고, 결국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스스로 술을 절제하기란 결코 쉽지 안다. 그래서 지혜자는 단호하게 술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34절에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술에 취하면 물결 위에 있는 것처럼 울렁울렁 거리고, 자꾸 길이 빙글빙글 돌면서 길이 좁아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 같다. 어쩜 그 상태를 이렇게 시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는지, 꼭 자신이 경험한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다.

 

35절에서는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라고 말하므로 술에 취하면 전혀 현실 감각이 없고 판단력이 떨어져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게 된다는 뜻이요,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는 말은 이렇게 술을 마시는 사람은 또 다시 술을 찾게 되며 결국 알콜중동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적용

이처럼 지혜자는 자신의 입에 넣는 것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음식이나 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가진 모든 욕구와 충동들을 스스로 제어하고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일은 결코 사람의 결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확고한 결심과 성령의 도우심이 하나가 될 때, 잠언이 말하는 참된 지혜를 가진 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일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목요일 : 우리의 책임

 

일요일 소지에서도 잠깐 말씀들을 드렸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자는 크게 두 가지 책임을 갖게 된다. 첫째는 그 지혜대로 살아야 할 책임이요, 둘째는 그 지혜를 나누어야 할 책임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혜는 그대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대로 살아야 하는 책임과 지혜를 나누어야 하는 책임은 결국 하나이다.

 

(24: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이 말씀을 보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없는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성경을 알든 모르든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통해 더 많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는 것은 응급 상황에 처한 환자를 돕다가 본의 아닌 과실로 환자가 사망 했거나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책임을 감면 또는 면제해 준다는 내용이다. 사실 예전에는 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을 구해주려다가 소송에 휘말리거나 죄를 덮어쓰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법은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고, 또 남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선한 사마리아인법은 미국의 대다수 주와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시행중이며, 우리나라에서도 2008613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마침내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도입되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미국은 응급상황을 당한 사람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은 사람까지 처벌하지만, 우리나라는 외면에 대한 처벌은 없다.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나 잠언 24장의 말씀이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과 그것을 도와야 할 사람의 운명을 하나로 묶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에게 도움을 베푼 당사자의 생명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리고는 그 결론이 바로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였다. 그렇다면 이를 행하면 누가 산다는 말일까? 강도만난 사람이 산다는 말일까? 아니면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그 사람이 산다는 말일까?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그 사람이 산다는 뜻이다. 결국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언 듯 보면 강도만난 자를 살리는 이야기같지만 사실은 그를 도와준 본인을 살리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를 행하라 그러면 너가 산다.” 이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잠언 2411절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 당하는 자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를 통해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사람의 운명과 나의 운명은 결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그 사람을 구원함으로서 나도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잠언 24장은 우리에게 이런 권면을 한다.

 

(24:23-25)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재판에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말은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유리한 재판을 하거나 유리한 증언을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관계나 이익이 아닌 옳음 그 자체, 의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증언을 한 나도 역시 저주를 받고 미움을 얻게 된다. 반대로 나와 가깝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일수록 그 잘못에 대하여 진실되게 견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요, 사랑이다.

 

적용

이 책임에 대해서 우리는 보다 실제적으로 자신의 삶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결국 나를 돕는 것이라는 사실. 그 사람의 운명과 나의 운명이 결코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 오늘 나는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책임을 다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내가 가진 지혜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을 의미하는가?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옳은 말, 바른 말은 무엇인가? 이것을 분명히 알고 적용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혜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 또한 필요하다. 저부터도 오늘 함께 나눈 말씀이 제 삶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다짐이 삶의 열매로 맺히길 간절히 소망한다.

 

마무리

오늘 우리는 진리 안에서 사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렇게 얻은 진리를 잘 소화하여 삶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일들이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예로 약한 자들을 돌아보고 지극히 작은 자를 예수님 대하듯이 대하는 것이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대신 의인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절제할 뿐 아니라 지혜대로 살고, 그 지혜를 전할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로 참된 지혜자의 모습임을 말씀드렸다. 오늘 이 한 시간의 말씀이 또다시 죽은 지식으로만 끝나지 않게 되길 바란다. 이 말씀이 삶에 소화되고 흡수되어 그 지혜 안에서 힘있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전세계에 계신 cbn 청취자여러분!

유명한 철학자 사르트르는 진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늘 우리가 쉽게 붙잡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그것은 타인의 의해 붙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붙잡는 것이다.

 

-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그분의 말씀 또한 당연히 진리이시겠지요

그 진리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지요

우리가 얼만든지 찾고자 애쓰기만 한다면 늘 친구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한주일동안 사랑하고, 사모하며 열심히 읽고 행동에 옮겨 그야말로

진리의 백성답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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