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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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3과 영원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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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Intro

우리는 지난주 교과를 끝으로 야고보서의 모든 내용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번 기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안식일로 성경에 나타난 복음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복음과 신약의 복음을 다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복음을 가리켜 영원한 복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복음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에 선포된 복음이 중간에 바뀌거나 없어지는 일은 결코 없으며, 신약의 복음도 역시 구약과는 별개로 주어진 새로운 것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 나타난 영원한 복음이란 무엇이며, 구약과 신약의 복음이 어떻게 서로 조화될 수 있을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일요일 : 구약에 나타난 복음

 

우리는 흔히 복음이라고 하면 신약에 나온 기별을 생각한다. 성경을 읽어봐도 구약에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다. 반면에 신약은 처음부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4:23) 하지만 그것이 구약에는 복음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구약에 복음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성경은 이미 구약 시대 때부터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에 가장 먼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복음이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요, 그분을 통해 죄의 권세가 깨뜨려질 것을 선포한 복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원복음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담과 하와에게 죄로 인한 저주가 주어지기도 전에 먼저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복음은 언제나 심판에 앞선다.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심판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인류 조상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씀하셨다. 출애굽 여정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그들을 업어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복음을 말씀하셨고(19:4-6), 죄로 인해 고통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 모든 허물을 사하고 죄를 가리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30:3-4, 32:1-5)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이 직접 그 죽음을 당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으며 (53:4-11), 결국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의 마음에 그분의 언약을 회복시키시겠다는 새 언약을 말씀하셨다.(31:31-3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신약 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끊임없이 인류에게 복음을 외치셨으며, 그 복음은 신약에 와서 비로소 온전히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이든 신약이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기별은 그들을 위한 복음이었으며, 그 복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바울은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누구일까? 바울은 히 3장부터 계속해서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비교하고 있다. 바울은 시 957절부터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마음을 강퍅케 하”(95:7)여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너희들도 복음이 주어졌을 때 스스로 마음을 강퍅케 하여 복음을 거절하지 말고, 그 복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임으로 그들 앞에 약속된 안식에 들어가라는 것이 히 3장과 4장의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히 42절에서 바울은 그들우리를 비교, 대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우리'는 바울 당시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복음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도 복음을 들었고, ‘우리도 복음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복음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므로 결국 복음을 통한 유익을 얻지 못했지만, ‘우리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므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3)

이러한 구분은 예수님의 비유에도 등장한다. 13장에 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예수님께 나온 큰 무리앞에서 말씀하셨다. (13:2) 하지만 18절부터 나오는 비유의 해석은 그 뜻을 알고자 하는 몇몇 제자들에만 말씀하셨다(13:10)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13:11-13)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너희저희를 구분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비유를 알기위해 예수님께 나아온 제자들이요, “저희는 비유를 듣고 떠나버린 큰 무리이다. 이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그분의 기적을 직접 본 사람들은 정확히 두 무리로 나뉘어졌다. 첫째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무리요, 둘째는 오히려 그분을 향한 반감이 더 커지는 자들이었다. 이것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말씀은 모든 청중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 비유에 담긴 의미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깨닫기를 원하는 사람. 다시 말해 그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만 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비유는 천국 비밀이었다. 그 비밀은 들을 귀가 있는 자들, 곧 예수의 복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참된 제자들에게만 허용되며,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닫혀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자만이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설명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저희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먼저 너희에게는 천국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희에게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 (11)

너희는 있는 자로서 받아 넉넉하게 되고, ‘저희는 없는 자로서 있는 것도 빼앗긴다. (12)

너희는 보고 들음으로 복을 받지만, ‘저희는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13)

 

이것이 바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핵심이다. 옥토는 여기서 말하는 너희이다. 이들은 말씀의 씨앗을 받으면, 그 씨앗을 마음에 잘 품어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길가나 돌밭, 가시떨기는 다 저희. 그들은 어떠한 이유를 대고서라도 그 싹을 틔우지 못한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봐도 보지 못하고, 도무지 천국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저희의 모습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을 히 4:2에서 그들우리로 설명한 것이다.

 

적용

이처럼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복음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혹은 저희는 복음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하여 결국 유익을 얻지 못했다. 반면에 우리혹인 너희는 복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싹을 틔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안식을 약속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개인의 선택이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결부시킬지, 아니면 거절하여 복음의 유익을 잃어버릴지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 모두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약속하신 영원한 안식에 다 들아가게 되길 바란다.

 

 

월요일 : 구현된 복음

 

성경은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다고 말한다. (4:23, 9:35)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약 3분의 1 가량이 비유로 되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천국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는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 구현된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에 월요일 소지에서는 복음을 가장 선명하게 담고 있는 탕자의 비유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크게 복음에 대한 3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복음의 기초

첫째로 복음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품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구원이 자신의 선행에 기초한다고 생각한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받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세를 납부하고,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과 절기를 철저히 지키며,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등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율법을 따랐다. 하지만 그들이 착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탕자의 비유를 보라. 그가 아버지를 떠나 종으로 살다가 다시 아버지의 아들로 회복된 것은 결코 그 아들의 공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을 기다리고, 맞이하며,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전적인 아버지의 은혜에 기초한 것이다. 오히려 아들은 그 앞에 아무런 공로 없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누릴 뿐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철저히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기초한다. 아들 스스로가 보기에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기에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를 품꾼이 아니라 아들로 회복시킨 것은 전적인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복음의 첫 번째 특징이다.

 

2. 아들의 선택

둘째로 복음이 개인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인의 선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그가 집에 있을 때나 집을 나갔을 때나 언제나 동일했다. 아니, 어쩌면 아들을 향한 간절함은 그가 집을 나갔을 때가 더 컸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리 아버지의 사랑이 하늘을 찌른다 할지라도 아들 자신이 이에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15:20)아가기로 결심하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종의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일요일 소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복음은 그것을 받은 자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효력이 달라진다.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약속된 영생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않고 거절한 자에게는 복음이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개인의 선택이다. 아무리 확실한 복음이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가 믿음으로 복음을 받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3. 아들의 변화

셋째로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이 선택이 하나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아버지께 돌아와 아들의 신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떠난 그는 종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그는 더 이상 종이 아니다. 그는 가장 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아들이 되었다. 이것이 그가 경험한 변화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아들 자신의 태도이다. 그는 아버지께 이렇게 말한다.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이 한 문장 속에서 우리는 그의 삶의 태도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태도가 변했다. 여기서 그가 하늘에 죄를 얻었다고 고백을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변했음을 말해준다. 그는 지금까지 무엇이 하나님께 죄가 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죄라고 하는 것을 더 즐기며 살았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오면서 가장 먼저 자신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가 경험한 첫 번째 변화이다.

 

둘째로 그는 아버지께 죄를 얻었다고 말한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그는 아버지께 죄를 지은 것이 없다. 그가 가지고 나간 돈은 어차피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이었기 때문에 자기 돈을 자기 맘대로 쓴 것이 아버지께 죄가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지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바로 그 죄다. 아들이 집을 나간 순간부터 늘 아들을 생각하며 돌아올 날만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 것, 그것이 바로 죄였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내 마음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가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고 헤아릴 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경함한 변화이다.

 

이 세가지 복음의 특징은 눅 189절부터 나오는 바리세인과 세리의 비유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복음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바리세인은 자신의 죄 없음과 경건함을 내세웠다. 자신은 불의, 토색, 간음도 안하며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도 철저히 구별하여 드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리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분 앞에 머리조차 들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했다. 그 결과 바리세인은 그대로 자기 죄에 머물렀지만 세리는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용서를 구하기로 선택했다. 그 결과 세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 마침내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됨을 경험하게 되었다.

 

적용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때마다 예수님의 두 비유를 기억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는 우리가 되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게 하자.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로 선택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요, 복음의 능력이다. 그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화요일 : 바울서신에 나타난 복음

 

9장에는 바울의 회심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때는 정오였다. 하루 중 태양이 가장 강하게 내리비취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비췄다. 그리고 그는 그 빛으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빛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더욱 분명하게 보게 해 준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빛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때 그럴까? 바로 어두움에 있는 자에게 갑자기 빛이 비출 때 그렇다. 빛이 전혀 없는 곳에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빛이 비취면 그는 오히려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바울이 그랬다. 그는 구약 성경에 능통했다. 모세오경의 율법을 다 알고 있었으며, 여러 선지자의 글들 또한 방대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그가 예수님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수님 없이 구약을 이해하려니 빛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는 것과 같았다. 그러던 그에게 빛이 비취었다. 그 빛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다. 그리고 그 빛은 바울로 하여금 자신이 철저한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두움에 있던 바울에게 빛이 비취자 그는 잠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오직 기도만 하였다. 바울에게는 그 시간이 빛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성경의 내용들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맞춰지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그의 눈은 점차 성경을 밝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어두웠던 그의 눈이 다시 보게 되었다. 바울은 이렇게 밝아진 눈으로 성경을 이해했고,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구약의 복음이 그리스도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경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성경에 능통한 자라고 생각했지만, 빛 없이 빛을 찾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고백했다. 그 후 그는 고후 315-16에서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했다.

 

(고후 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바울은 구약을 읽으면서도 그리스도 없이 그 말씀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수건으로 책을 덮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다. 마치 자신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확신있게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가 그러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고후 3:15-16)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이처럼 바울은 모든 성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이야기한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십자가를 중심으로 구약을 가르치신 것처럼, 성경의 모든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해되며, 그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로 돌아가면그 말씀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취되고 나타난 복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에도 월요일 소지에서 말씀드린 복음의 3가지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1. 하나님의 의

먼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바울은 말한다. 복음은 사람의 의를 통해 얻는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 의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2. 모든 믿는 자에게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할지라도 그것을 믿는 자, 즉 복음을 자기 믿음과 결부시킨 자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선택의 중요성을 말한다. 아무리 탕자 아버지의 사랑이 끝이 없다 할지라도 본인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오기 전에는 그 복음의 유익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3.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들을 믿음에서 믿음으로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것으로 믿고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반드시 이와 같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믿음은 더욱 자랄 것이며, 그 품성도 역시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요약 및 적용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복음은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있음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구원이 이를 것이며,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믿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도록 날마다 변화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모두의 삶에서 날마다 경험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수요일 : 새 언약

 

우리가 보통 새 언약과 옛 언약을 이해할 때 시간적인 개념으로 이 둘을 구분한다. 옛 언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그러니까 구약 시대에 동물의 피를 통하여 죄 용서를 받는 언약이고, 새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를 받는 언약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해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바울은 오히려 새 언약과 옛 언약의 구분을 시간의 문제가 아닌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문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옛 언약은 그리스도의 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노력, 즉 자신의 의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태도요, 새 언약은 자신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는 태도이다. 화잇부인은 새 언약, 즉 은혜의 언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조, 370

은혜의 언약은 에덴에서 처음으로 사람으로 더불어 맺어졌고 타락 후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 이 언약은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제공하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순종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공하였다.

 

화잇부인은 여기서 새 언약인 은혜의 언약은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졌다고 말한다. 그 언약 안에는 용서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순종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약속되었다. 이러한 은혜의 언약은 또 다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22:18)라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이 언약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것을 믿었다. 이처럼 아담이든 아브라함이든 언약의 중심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서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그 언약은 모두 새 언약, 은혜의 언약이었다.

 

그렇다면 옛 언약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과 계명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약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대부분을 다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한 후 약 1년간 그들을 시내광야에 머물게 하면서 그 곳에서 율법을 주시고 성소를 짓도록 하시므로서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군사로 변화되도록 하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미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경험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 덕분이었다. 10가지의 재앙을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가 그들을 종의 삶에서 구원하였다. 뿐만 아니라 홍해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길을 여셨다. 그 뿐만이 아니다. 광야에 접어들어 이제 더 이상 마실 물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시므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이와 같은 경험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알게 해 주었다. 이것을 충분히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에 율법을 주셨다. 왜냐하면 그 율법도 역시 스스로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였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24:7)고 외쳤다. 그러나 이 외침은 자신들의 죄악과 그리스도 없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외침이었다. 그 결과 율법을 주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에게 절하는 죄악을 저질렀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백성들에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이셨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자기 의로 구원을 이루려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계속해서 이어져 결국 예수님 당시의 수많은 유대인들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옛 언약이란 단순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 자체를 말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지키려고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교과책에서도 문제는 언약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에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쉽게 정리하자면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나누는 기준은 누구의 의로 구원을 얻고자 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라 할지라도 구원을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옛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이요, 아무리 구약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아담이나 아브라함처럼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 언약을 이해했다면 그는 새 언약 안에 있는 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과책 하단에 있는 교훈에서는 이 내용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우리의 관점이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옛 언약은 새 언약이 될 수 있다.”

 

결국 옛 언약과 새 언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언약의 내용이 다르고, 새 언약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둘의 차이는 시간의 차이나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그 언약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의 차이이다.

 

적용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새 언약 안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옛 언약 안에 살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의를 자랑하러 나가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의를 감사하러 나가는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모두 다 그리스도의 의를 감사하러 나간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의 삶을 보다 진지하게 살펴보라.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내 속에서 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기를 얼마나 간구하며 살고 있는가? 성령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는 역사를 얼마나 깊이 경험하고 있는가? 새 언약의 삶이란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능력을 경험하는 삶이다. 우리의 죄된 품성들이 사라지고 우리 속에 성령의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맺는 삶이다. 이렇게 매일의 칭의와 성화의 경험을 통해 내 속에서 의를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할 때, 그 삶은 새 언약의 삶이 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우리 속에서 의를 이루시는 그 은혜와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목요일 : 복음의 절정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복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구약에 나타난 복음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비유와 바울 서신에 나타난 복음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반에 걸쳐 소개된 복음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 복음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모습으로 주어지긴 했지만 모두 한 복음을 말하고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을 통해 성경의 모든 복음들은 하나로 꿰어지며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 진다. 이번 과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복음을 살펴볼 것이다. 과연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복음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복음은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14장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전할 기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 천사의 기별이 그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 기별을 소개하면서 이것은 모든 민족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라고 말한다. “영원하다는 말은 미래의 끝이 없다는 뜻도 되지만 동시에 과거의 끝이 없다는 뜻도 된다. 쉽게 말해서 영원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때에 세상에 전파될 영원한 복음은 세초부터 세말까지 변함없는 하나의 복음이다. 우리가 일요일 소지부터 살펴본 그 복음이 바로 영원한 복음인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복음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하거나 바뀌지 않았다. 단지 바뀐 것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이다. 아담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것도 영원한 복음이요, 마지막 때에 남은 자손을 구원할 복음도 역시 영원한 복음이다. 그 복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시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선포된 유일하고도 변함없는 복음이다.

 

그런데 계시록 14:12에는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을 모든 민족들에게 전할 자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월요일 소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복음은 하나님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 있지만, 그것이 개인의 삶에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인의 선택, 즉 개인의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남은 자손의 특징에 예수에 대한 믿음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변화를 가져다주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은 예수를 믿는 자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이다. 죄된 본성으로 인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 그들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짐을 경험하는 삶이 바로 남은 자손의 삶이요, 구원 받은 자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계명들을 문제적으로 따른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물론 마지막 때에는 그들의 참 신앙이 안식일 계명을 중심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이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율법의 핵심인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는 삶을 의미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이것이 새 언약 안에 사는 자의 삶이다. 그러므로 결국 계시록에 나타난 복음도 역시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그분의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적용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은 우리 삶에 어떤 능력을 보이고 있는가? 과연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가? 참된 복음은 우리의 속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죄 용서 뿐만 아니라 날마다 벌어지는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이 복음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새 언약 안에 있는 자의 특권이다. 이 놀라운 특권을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되길 바란다.

 

마무리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복음을 살펴보았다. 구약의 복음이든 신약의 복음이든 모든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우리는 죄의 용서 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의 모습이다. 믿음을 통해 순종의 열매가 맺혀지고, 순종의 열매를 통해 그 믿음이 세상에 증거될 때, 세상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외쳐지는 영원한 복음을 그들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우리 각자의 삶에서 경험되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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